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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KBo

울고 웃는 프로야구신인드래프트의 역사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1987~1989)

※ 각 자료들은 네이버 검색자료를 캡쳐하였습니다. 문제가 될시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야구팬은 물론이고 고졸 대졸등 프로의 부름을 기다리는 미래의 유망주들은 이날이 우리의 수능보다 더욱 긴장되는 날일꺼다.

 

저 바다건너 미국의 야구에선 애초에 신인영입은 각 구단별 자유계약을 통해 이루어졌다. 즉 돈많은 팀은 좋은선수를 많은 돈을 주고 사올수 있으니 이는 곧 전력의 양극화를 낳았고 곧 mlb에 근간을 흔들게 된다. 이에 mlb 사무국은 "드래프트제도" 라는걸 도입한다.  이는 각 구단에서 공평하게 한명씩 뽑아가는 제도로서 우수신인 쏠림현상을 완화하는 제도로 각광을 받게되며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온다.(물론 이에 대한 폐단이나 편법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대한민국프로야구의 출범은 지역연고와 매우 뿌리가 깊다. 롯데자이언츠는 오로지 부산갈매기 , 기아 타이거즈는 오로지 남행열차. 그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이고 그지역을 상징하는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따라 KBO는 연고자 1차지명과 전체를 뽑을수있는 2차지명 제도로 수정하여 만든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차지명은 자기 권역내에 있는 신인을 타 구단이 뽑아가기전에 먼저 뽑을수 있는 권리다. 즉, 롯데자이언츠는 1차지명에서 부산경남의 유망주중에서 먼저 뽑을수 있고 기아타이거즈는 전남의 유망주, 즉 광주일고등의 에이스를 먼저 뽑을수 있는 권리를 주는것이였다. 이는 각 팀의 연고문화에 더욱 깊은 뿌리를 형성하게 되었고 나아가 관중흥행몰이에 이바지하는 제도가 된다. 또한 각 구단들은 1차지명때 더 우수한 선수를 픽 하기위해 자기권역의 중학교 고등학교를 체계적으로 관리, 육성하게되고 이는 선수의 질을 높이는 나아가 한국야구의 질을 높이게된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1차지명에서 자기연고의 팀(서울 = MBC , OB / 삼성 = 대구 ,경북 / 빙그레 = 충남,충북/ 롯데 = 부산 ,경남 / 해태 = 전남 전북 /삼미,청보,태평양 = 인천,경기) 를 무한대로 뽑게된다. 이건 결국 2차지명까지 가지 않는 계기가되고 지역연고의 색을 매우 깊게 했다.

하지만 1987년부턴 연고지1차지명을 3명으로 제한한다. 이때부터 각 구단은 머리싸움을 하게되며 (1차지명을 누구를 뽑느냐에 따라 2차지명때 타 구단이 자기구단의 팜에서 픽업하는 선수가 달라지기때문에..) 본격격적으로 활기를 띠게된다.

하지만 1차지명3명도 너무 전력평준화에 (모든 프로의 지향점은 상향평준화기 때문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하여 1990년에 1차지명을 1명으로 줄여버린다. 그렇게 2009년까지 이어져오다 2010년에 1차지명이 폐지되고 전면드래프트로 시행된다.

(-전면 드래프트란 : 1차지명이 있던 연고지 없이 모든 신인자격선수를 모아놓고 구단별로 한명씩 한명씩 뽑아가는걸 말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공평한제도로 보이지만 한국처럼 중 고등학교 팜이 약한 나라에서는 오히려 1차지명이 있음으로 해서 얻는 이익이 더 많은듯하다. 필자도 1차지명이 다시 부활 하였으면 좋겠다.)

 

이 드래프트에 따라 선수구단의 운명을 좌우하게된다. 예를 들면 2006년 신인지명 1순위는 롯데자이언츠인데 그당시 광주일고 거물 나승현을 영입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 응? 나승현? 사이드암 잠깐 반짝했잖어?" 라고 하겠지만 그해 한화는한국프로야구의 역사에 한획을 긋는 류현진선수를 뽑는다. 그리고 그선수는....

이제부터 한해한해 보도록해보자.

1987년 이전의 드래프트는 지역연고에서 무제한으로 뽑을수 있기때문에 굳이 분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1987년부터 써본다.

이름에 선이 그어져있는건 뽑았지만 계약하지 않은경우다.

#.1 1987년

1차지명

 

 

여기서 주목할 팀은 삼성라이온즈가 아닐까 싶다.

삼성의 외야한축을 맡았던 장태수. 그리고 전설의 키스톤콤비 류중일-강기웅을 뽑은해.

류중일은 지금 감독을 하는 그분이 맞다.

그외에 MBC 노찬엽이 선발의 한축을 맡았고 그외엔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사라진다.

 

2차지명

보듯 2차지명은 지역연고보단 실력에 의해 뽑은해가 된다. 여기서 주목할 선수는 빙그레 1순위로 뽑힌 이정훈선수.이글스의   레전드로 남아있는 원조 악바리인 선수다.

 

#.2  1988년.

 

 

변화구의 마술사 조계현선수가 나타난해이다. 그리고 OB의 4번타자인 김상호선수도 나타났던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전 은퇴한 이글스의 최고의 투수 송진우선수도 뽑힌다. 1988년에 데뷔해서 2009년에 은퇴한다. 대졸선수라 어마어마한 기간동안 자기관리를 철저히하며 타자를 기만한다.

 

 

이때 태평양 돌핀스 구단이 생기면서 태평양은 많은 선수를 뽑는다.

2차지명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선수는 역시 롯데호랑나비 김응국 선수가 아닌가 싶다. 최고의 좌타자.롯데팬이라면 누구나 외치는 호랑나비. 이 선수가 이때 입단한다.

 

#.3   1989년

 

 

3년째 신인지명을 올리면서 느끼지만 역시 야구는 투수놀음인가보다. 30년전인 이때도 1차지명은죄다 투수가 차지하고있으니 말이다..

여튼 , 이 해에 입단했던 특급선수는 해태의 이강철. 워낙 대단한 팀이라 어마어마한 선수가 많은데 이걸 반증하면 이당시 호남고등학교 야구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수있는 단적인 예다.

 

 

89년 2차지명의 특급선수는 역시 한국 최고의 마무리중 한명인 정명원선수가 아닌가싶다.정명원선수에 대해 길게 쓰고싶지만 나중을 기약하며...여튼 태평양의 마무리를 도맡아 주는  특히 94년엔 40세이브 1.36이라는 활약을 한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90년부턴 다음편에 기재를 해야겠다.